참사람 부족은 자연과 조화를 이룰 줄 아는 대가들이었다. 그들은 우주 만물을 이용하지만 어느 것 하나 어지럽히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날 줄 알았다."(말로 모건의 < 무탄트 메시지 > 중)
미국 캔자스시티 출신의 백인 여의사 말로 모건은 어느 날 사막에서 열린 한 원주민 집회에 초대를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예순두 명의 원주민들과 함께 걸어서 호주 대사막을 횡단하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 넉 달에 걸친 여행의 기록이 < 무탄트 메시지 > 다.
▲절물휴양림 입구 |
5만 년 이상 호주에서 살아았을 것이라 추측되는 그들이 오랜 세월 동안 어떤 숲도 파괴하지 않고, 어떤 강물도 더럽히지 않고, 어떤 오염 물질도 자연에 내놓지 않으면서 풍부한 양식과 안식처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건강한 삶을 오래도록 산 뒤에, 영적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참사람 부족이 던지는 메시지는 오늘의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수령 50년 정도된 절물의 삼나무숲은 울창하다. |
어떤 이는 이를 문명의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기도 하지만, 실은 인간 자신이 자연으로부터 고립된 존재임을 자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자연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그 존재의 근거마저 잃어버린 것을 뒤늦게 깨달은 인간은 다시 숲을 찾아 그 상처를 치유하기에 이르렀다.
숲을 찾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요즈음 부쩍 숲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건 비단 여행자만은 아닌 듯하다. 숲은 인간에게 휴식과 명상, 치유의 공간을 제공한다. 숲은 우리 심장의 산소 탱크이자 생명의 자궁이다. 숲이 없는 자연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아직 숲에 대한 인식은 빈약하며, 더더구나 숲의 어느 것 하나 어지럽히지 않고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날 줄 모른다.
시름을 떨쳐 버릴 수 있는 숲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삼나무숲에서 동남아에서 온 듯한 수녀님들이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다. |
제일 먼저 보이는 건 삼나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삼나무에 눈 맛이 시원하다. 50여 년 됐다는 삼나무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에 마음이 맑아지고 몸이 향기로워진다. 마구마구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식물이 병원균·해충·곰팡이에 저항하려고 내뿜거나 분비하는 물질)에 기분마저 우쭐해진다.
대체 삼나무가 몇 그루나 될까. 울울창창한 숲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도 금방 지워져버렸다. 아무렴 어떤가. 동남아에서 온 수녀님들은 이 모든 것을 사진기에 담느라 분주하다. 그 모양이 아이처럼 순수해 보이고 숲처럼 맑아 보인다.
▲절물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숲길은 '삼울길'이다. |
이곳에서 난 벌써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일상의 번잡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발걸음도 조심조심, 최대한 숨을 죽이고 한 발 두 발. 때론 땅을 향해 허리를 낮추고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지만 소란스런 소리들은 이내 나무와 나무 사이에 묻혀 버린다.
▲숲에선 누구나 명상과 치유를 할 수 있다. |
삼울길 끝에 목공예 체험장이 나왔다. 야외에 나무로 만든 각종 곤충들이 전시돼 있어 눈길을 끈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실제보다 엄청 큰 다양한 곤충들을 만져보며 놀라워한다.
이곳, 아이들도 즐거워하는 곳입니다
▲목공예 체험관 야외에는 엄청 큰 나무 곤충들이 전시되어 있어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
아이들에게 목공예 체험을 시키고 숲으로 나왔다. 장생의 숲길을 걸었다. 여태까지의 나무로 된 데크가 없어지고 이곳은 오롯이 흙으로 길이 나 있다. 숲도 인간이 조림한 흔적이 없는 원시의 숲 그대로이다. 걷는 맛이 절로 즐거워진다.
▲휴양림 내에는 목공예 체험장이 있어 아이들에게 좋은 공부가 된다. |
숲길 가운데에 뜬금없이 나타난 시계가 눈길을 끌었다. 인적 하나 없는 이 적막한 숲에 왜 시계를 두었을까. 숲길을 걷다 너무 깊이 침잠하여 어느새 시간마저 잊고 있었음을 기억하라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이곳 장생의 숲길은 오후 4시 이후에는 일몰로 인해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원체 숲이 깊다 보니 시계를 두어 현실로 돌아갈 시간을 일깨워주는 모양이다.
▲장생의 숲길은 11.1km로 휴양림 내에서 가장 긴 숲길이지만, 흙길이 있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
▲장생의 숲길에서 만난 시계의 용도는? |
삼나무 숲 사이로 아담한 건물 한 채가 보였다. 실내산림욕체험관이었다. 문을 열자 시원한 냉기가 몰아쳤고, 냉방이 잘 된 실내로 들어서자 나무 냄새가 코를 강하게 자극했다. 삼나무, 편백나무, 소나무 등 나무 종류별로 사방 벽을 두르고 방을 만들었다. 나무의 향기가 온몸으로 파고드는 느낌에 한참을 머물렀다.
▲사방 벽에 나무를 대어 피톤치드가 마구 뿜어져 나오는 실내산림욕체험관 |
▲숲 속에서 탁족을 하는 그 맛을 어디에 비길쏘냐! |
숲 덤불 사이로 무덤 한 기가 보였다. 제주에선 밭 한가운데나 오름 주변에서 흔히 무덤을 볼 수 있다. 봉분 주위로 돌담을 쌓는데 이를 '산담'이라고 한다. 제주의 산담에는 망자의 혼령이 드나들 수 있도록 출입문인 '시문'을 둔다. 남자는 오른쪽, 여자는 왼쪽에 둔다. 시문이 없는 경우는 돌계단을 만들어 영혼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아이가 가져온 솔방울, 우리집을 지키고 있지요
▲흔히 오름이나 밭에 있는 제주의 무덤에서는 산담을 볼 수 있다. |
▲절 옆에 물이 있어서 '절물'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
생이소리질에 이르자 삼나무 대신 짙푸른 활엽수가 숲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새소리라는 의미의 제주도 말을 길 이름으로 그대로 붙여 정겹기까지 하다. 절물오름 둘레로 난 이 숲길에선 그 이름처럼 새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숲이 이따금 틈을 내어준 곳에는 하늘이 열리고 시원한 오름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나무로 된 데크가 있어 장애인이나 노약자도 숲을 산책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생이소리질은 최근에 1.8km가 연장돼 더 오래도록 우거진 활엽수 길을 만끽할 수 있게 됐다.
▲생이소리질(길)에는 활엽수가 우거져 있다. |
▲생이소리길은 나무 데크를 깔아 놓아 노약자나 장애우들도 부담업이 걸을 수 있다. |
처음 숲에 들어섰던 삼울길에서 일행을 기다렸다. 멀리서 아이가 뛰어왔다. 아이의 손에는 솔방울 하나와 작은 나무판이 들려 있었다. 아이는 배낭에 솔방울을 달았고, 나무와 버섯지붕을 한 집은 우리 집 현관문에 지금도 달려 있다.
▲절물자연휴양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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