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에이지퀘이크(Agequake)

햇과 2009. 9. 17. 15:21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 지금의 카스피해 연안에 살던 고대 카스피족은 70세가 넘으면 모조리 굶겨 죽였다.

시체를 벌판에 버린 뒤 어떤 짐승이 물어가는지로 운을 점치기도 했다. 독수리에게 물려가는게 가장 운이 좋고, 들짐승이 그 다음, 아무 동물도 접근 안 하면 운이 나쁘다고 봤다.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의 경우 노인들에게 고된 일을 시켜 진이 빠져 죽음에 이르도록 했다. 북극해 일대 에스키모들은 늙어서 스스로 먹을걸 못 구하면 목 졸라 죽이거나 무리가 이주할 때 남겨두고 떠났다.

동양도 예외가 아니엇 여진족은 혼자 운신 못하는 노부모를 자루에 넣은 뒤 나뭇가지에 걸고 활을 쏘았다. 단 한 발로 죽게 하면

효자라는 칭송까지 받았다고 한다.

 식량, 땔감 등이 넉넉지 않던 고대 사회에서 노인 봉양은 사치였다. 한정된 자원을 생산성 높은 젊은이들에게 쓰는 게 집단 전체에 훨씬 이롭다고 여겼다. 살로(殺老),기로(棄老)풍속이 만연했던 이유다. 경제 발달과 함께 차츰 자취를 감췄던 노인 홀대론이 요즘 미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건강보험 개혁을 추진 중인 오바마 정부가 재정난에 빠진 노인 대상 공공보험 '메디케어'를 효율화하겠다고 밝힌 게 발단이었다.

보수 야당은 즉각 "오바마가 힘없고 병든 노인들의 치료를 중단시키려 한다"며 맹공에 나섰다. 성난 노심이 야당 편에 기울고 있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900만 명 가까운 어린이들이 무보험으로 고통 받는데 65세 이상 노인들만 돈 걱정없이 의료 혜택을 받는 건 불공평하다는 주장이다. 노인들의 과도한 연명치료를 줄이고 그 돈을 아이들 예방접종에 쓰자는 제안도 나온다.

세대 간에 한바탕 전쟁이 벌어진 양상이다. 일찍이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격변을 예고한 (에이지퀘이크)의 저자 폴 월리스는

"투표권을 무기로 부양 의무를 강요하는 노인들과 이에 반발하는 젊은이들의 대결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본 바 있다.

한국도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가 아니다. 2050년이면 65세 이상 노인이 전 인구의 38%로 늘어 젊은이 1.3명이 노인 1명을 먹여 살려야 한단다. 7명이 1명을 부양하는 지금도 벅차다고 아우성인데 그때쯤이면 그 옛날 살로,기로 풍속이 재현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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